1940년대 당구여행(일본,중국)

생각해 보면 나의 당구수업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 같다. 일부러 당구만을 목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해외여행은 결과적으로 외국 당구장을 순방한 격이 됐고 외국무대를 돌아본 이 체험이 기량 향상의 알파 요소였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0년 동경 2천여개 당구장

첫 번째의 외국행은 혜화전문 2학년 때의 겨울방학을 이용한 동경 구경이었다. 지금은 머나먼 현해탄이지만 그 시절의 일본땅은 비교적 내왕이 자유로웠다. 보다 넓은 세계로 시야를 열어 주기 위한 가친의 배려가 관부(關釜)연락선을 타게 만들었으나 1주일여의 동경 체재는 한마디로 ‘당구계 시찰’이었다. 이 당시 동경에는 약 2천여개의 당구구락부들이 그야말로 문전성시의 붐을 맞고 있었는데 그 중 20여개 이상을 순방했으니 나의 당구 광기도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1940년대 일본의 당구장 분위기

일본 당구장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우선 깨끗함에 질렸으며 이런 청결함은 당연히 사교장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일반적인 실력은 그다지 월등하지 않아 대개가 아마추어들로 그냥 즐기는 정도였다. 간혹 고점자들을 만나 대결도 해봤지만 나 같은 3백점대 실력자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실전에서 느낀 점은 우리 당구가 순전히 연습에 의한 경험 당구인데 반해 일본은 계산법에 의한 정석 당구로 특히 기본기가 충실한듯 싶었다.

이 학생시절에 겪은 일본당구계 견학은 두 가지의 멋진 성과가 있었다. 그  하나는 앞회에서 말한 일본의 당구명가 가츠라(桂) 일가와의 상봉이고 다른 하나는 쿠션 계산 책자의 입수다. 유명한 가츠라구락부는 당시 긴자(銀座3町目)에 위치했고 자매 중 동생인 노리꼬(典子)씨와 해후, 오래도록 친분이 이어졌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갓 30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역시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섬세한 손길이 상아공을 겨냥할 때의 그 모습은 젊은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3쿠션 책자란 당시로서는 우리 당구인들에겐 매우 생소한 이름이었다. 당구에 관한 책자가 많이 나온 지금에도 이 책만은 역시 뛰어난 지침서였다. 하물며 그 시절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내용은 각 공의 위치에 따라 쿠션 포인트를 이용한 3쿠션치기의 꺾임 계산법인데, 한마디로 포인트 보는 법을 공식화시킨 해설집이었다. 당시 일본내 3쿠션 당구법의 최고봉 마쓰야마 긴레이(松山銀嶺)가 직접 쓴 이 역작은 현재까지도 당구기술서 중의 교본으로 3쿠션 수업자들에겐 가히 필독의 원전이다.

내가 이런 쿠션 계산책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3백점대에 올라 그간의 보통 크기 중대에 점점 싫증을 느끼고 충무로 쪽 일본인촌 구락부에 출입하고부터였다. 내가 그쪽의 대대에 익숙치 못해 쩔쩔매는 데 반해 일본인들은 정확한 각도로 수준 이상의 실력을 보였다. 연유를 알고 본즉 바로 이 전문서적을 통한 각도계산이었다. 온 장안을 헤매다시피 뒤졌으나 입수하질 못했고 동경에 닿자마자 최우선 선결과제로 책을 구입했던 것이다. 바둑도 그렇듯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연후에는 반드시 이론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 다음 단계의 벽을 뛰어넘을 수가 있다.

평양 서문통당구장

이 일본행이 있고부터 틈나는 대로 국내 각지의 당구장도 여행삼아 찾아봤는데 남쪽보다는 이북이 저변인구나 기술면에서 보다 우위였었던 것 같다. 특히 평양, 북청, 함흥, 청진 등지가 각기 한바닥을 이루고 있었으며 3백점대 이상의 고점자도 많았다.

이 중 평양은 마치 안방을 드나들듯이 하루길로 나들이한 적도 많았으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창경원 벚꽃이 만발할 때쯤이면 모란봉 벚꽃도 꽃순을 열어 대략 1주일쯤 늦었다. 이 때부터 꽃길 따라 당구원정을 가면 현지의 서문통당구장이 주전무대였다. 실력을 떠나서 평양 젊은 패들의 호기(豪氣)로 봄밤이 온통 술에 젖곤 했었다.

중국(베이징) 당구 여행

두 번째의 외유인 북경행은 동경 때와는 달리 순전히 진학 목적의 여로였다. 이때가 내 나이 20살 되던 1943년 여름. 그 이전 혜화전문 3년을 졸업하자 선친은 일본 유학 대신 중국을 권했고 이에 따라 북경대학 문학부를 지망해 원서를 제출하기 위한 행차였다.

서울을 하오 6시 반에 떠난 만주행 특급 희망호가 봉천(奉天)에 닿기는 이튿날 하오 4시 반. 기차가 멎자마자 그 길로 청엽구락부(당구장)에 직행한 것은 이곳에 선배당구인 박수복(朴守福)씨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경 때와 마찬가지로 외국인과 겨뤄 보고픈 젊은 패기가 작용한 중도하차였다. 아무튼 낯선 이역에서 평소 친숙했던 박선배를 만난 반가움이란 대단했고 3일간을 머물며 당구장과 술집 명소들을 찾아 쏘다녔다. 봉천 시내에는 약 50여개의 당구장이 있었으며 대다수가 일본인들의 경영이어서 시설이나 격조 모두 손색이 없었다.

한중일 당구 특징

그곳 당구고객의 국적 비율은 1할 정도가 중국인, 2할이 한국인이고 태반이 일본인들이었다. 게임을 관전하며 재미있게 느낀 것은 당구대 위의 제각기 다른 국민성이었다. 일본인은 쉬운 공부터 치되 섬세한 반면 스케일이 적어 모험성이 없었고, 한국인은 실속보다 과시 위주면서 사내답게 투기적인 당법이고, 중국인은 물론 실력도 뒤졌지만 지더라도 대국적으로 게임보다 분위기를 즐기는듯 싶었다.

출처: 빌리어드코리아

우리나라 최초의 당구장 무궁헌(1924년)

처음 궁궐내 어용놀이로서, 다음 일본인들의 사교구락부로 소개되기 시작한 당구대가 우리네 영업장으로 나타나기는 1924년 와세다 대학 출신의 인텔리겐차 임정호(林政鎬)씨가 현 조흥은행 맞은편 광교통거리에 세운 「무궁헌(無窮軒)」당구장이었다.

이 한국 최초의 우리 당구장은 허름한 목조 건물 2층에 당구대 2대의 빈약한 시설이었지만 기품과 격조에선 그때까지의 일인 당구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당시 식민 압제하의 억눌린 민족감정은 무엇 하나 왜놈들에게 처질 수가 없었고 이런 경쟁의식은 일종의 반항 컴플렉스였다고도 하겠다.

우선 「무궁헌」이란 이름부터 나라꽃을 상징해 자주의식을 담았던 것이다. 실제 이 「무궁헌」당구장은 암암리에 학생운동 연락처로서 이용됐다. 이미 말했듯이 초창기 당구인은 거의 모두가 상류층의 젊은 엘리트들이었고 당시 엘리트라면 전문학생이나 동경 유학생들이 주축이었다. 이들이 당구장을 비밀 아지트로 삼게 됐음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당구장은 위락시설인만큼 누구나 출입이 자유로운데다 그만큼 당국의 감시도 약했기 때문이다. 이때 「무궁헌」당구장에 자주 얼굴을 비쳤던 명사 중에는 윤치호, 유진오 두 분 선생도 끼어 있었다. 물론 당구를 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곳에 나타나는 동창이나 선후배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런 사실이 들통나서 연락책이었던 김효근씨가 종로경찰서에 잡혀가 약 2개월간 심한 고문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이맘때쯤 서울에만 국한돼 그 숫자도 한두 개를 헤아리던 순수 우리 당구장이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무궁헌」당구장이 개장된 지 1년 후인 1925년께부터였다. 주로 종로1, 2가를 중심으로 인사동, 낙원동 일대가 본거지를 이뤘는데 동아(2대) 중앙(4대) 테이라(1대) 등이 선두 그룹이었다.

특기할 사실은 포켓 당구대가 동아에 맨처음 설치돼 인기를 모았던 점이다. 차츰 상업당구장이 안착됨에 따라 고객층도 다양화를 보여 사각모의 최고 지식층 외에도 포목상, 양복점, 요식업체 등 호상(豪商)들과 일제하 작위 집안의 귀족 자제들도 어울렸는데 이색 인물 중에는 이완용과 박영효의 손자도 끼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두 귀공자는 실력도 만만치않아 1백 50점대의 고점자였다고 한다. 이완용은 구한말 역사에 오점을 찍은 장본인으로 이른바‘을사오적(乙巳五賊)’의 으뜸 인물이다. 그의 후손이라면 상당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만한데도 당자의 인품이 이를 용훼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고 오히려 그 세련된 매너가 주위의 선망을 샀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구가족 홍난파

이 초기 보급단계 우리 당구장을 즐겨 찾고 게임 품격을 높였던 선배 당구인들의 모습을 꼽아 보면, 우선 당구가족이었던 음악가 홍난파씨 일가를 앞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 당시 난파 선생은 종로3가에서 바이얼린 강습소를 열고 있었고 그 옆에 종로당구장이 자리해 퇴근 후면 대포집을 찾기에 앞서 먼저 큐대부터 잡아 하루의 피로를 씻었다고 한다. 선생의 당구 실력은 1백 20점(오늘날의 300점대)으로 적수가 흔치 않았다고. 그런데 친조카인 두 형제가 그에 못지않은 당구팬들이었다. 이분들은 모두 의사로서 형 홍재유씨는 안과, 동생 홍사유씨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였다. 그 이후 홍재유씨가 제천에 옮겨 감으로써 형제가 떨어졌으나 당시는 모두 종로통의 명문 개업의였다. 숙부인 홍난파선생을 필두로 형제분이 똑같이 당구에 심취해 그야말로 당구집안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홍재유씨는 셋 중에서도 가장 열성파였던 것 같다. 얼마나 당구를 좋아했던지 아예 당구장에 살다시피 했고 이 때문에 급한 환자가 있을 때는 간호원이 달려와 밀쳐내야만 마지못해 큐대를 놓았다고 한다.

원로 영화감독 안종화씨와 그 시대의 최고 스크린 액터 나운규씨도 빼지 못할 당구인으로 실력은 각각 60점(현 2백점)과 40점의 보통 수준이었다. 특히 나운규씨는 평소 말이 없기로 유명했는데, 당구대에서도 시종 침묵 일색이어서 그와 한번 상대한 사람은 그 엄숙함에 질려 다시 어울리기를 기피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저명 당구인과는 달리 순수 당구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았던 고점자들로는 서정원·김효근씨 등이 있었고 이들의 점수는 3백점으로 한국인으로는 최고점이었다. 참고로 이때 국내 최고점자는 후쿠도쿠(福德) 무진회사 사원이던 일본인 다까끼(高木)로 그의 점수는 5백점이었다.

또 다른 고점자를 몇 사람 소개한다면 이문식당 주인 홍종환씨와 명월관 대표 이시우씨로 이들은 어떤 면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 당구 발전의 간접 지원자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력이 월등한 데서 이 고급 사교장의 재정적 후원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월관 대표 이시우씨의 당구 점수는 2백점대로 수준급 게임에는 으례 내기가 따르게 마련이고 이씨는 산해진미에다 기생까지 거느리고 보니 풍류한량들에게는 안성맞춤의 내기 상대였다. 여기에다 이씨 자신도 놀이판의 낭만이라면 녹록지 않은 품성이라 당구장 내의 그의 인기는 불문가지. 한판 승부에 명월관 파티로 이어졌음도 흔히 있는 일이었을 테니 그의 호방함이 이를 물리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내기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간에 그는 이 선심 파티를 즐겨 감수했다는 얘기다.  

출처: 빌리어드코리아

베트남 당구 시장 규모

전국 당구장수 8000여개, 호치민에만 1,000여개…시간당 2,800~3,700원 韓25% 정도
4~6대 중소형 클럽 다수…20대 넘는 고급 대형클럽도 등장
한국식 ‘패자는 카운터로’문화…물과 음료수는 유료

위로는 중국에서 아래로는 남중국해까지 길게 뻗은 베트남은 북부는 수도 하노이시, 중부는 관광지로 유명한 다낭시, 남부는 베트남의 경제중심지 호치민시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들 주요 도시마다 각각 문화와 유행의 흐름도 조금씩 다른데, 지역별로 선호하는 당구종목도 다르다. 북부에선 포켓볼, 남부에선 캐롬(1쿠션, 3쿠션)종목을 선호한다. 이 가운데 호치민은 베트남 캐롬의 허브역할을 하고 있다.

VBSF에 따르면 현재 호치민에서 영업중인 당구장은 1000여 곳. 베트남 전체 당구장(8000여곳)에 12.5%에 달하는 숫자다. 이 클럽들이 전문선수는 물론 아마추어 선수들의 연습장이자 일터로, 동호인들에겐 생활스포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등록선수는 100여명에 동호인수는 1만여명에 달한다.

당구장 1시간 2800원, 영화표 ‘절반’ 가격

베트남의 경제중심지 호치민의 풍경은 한국의 1980~90년대 도심지를 보는 듯하다. 시의 최대 번화가인 1군(Quận 1)에는 현대식 고층건물이 몰려 있지만, 1군을 조금만 벗어나면 1~2층의 상가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호치민 1군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인 빈탄(Bình Thạnh)군. 2층 이하 높이의 상가건물들이 왕복 2차선 대로변을 끼고 쭉 늘어섰다. 이 건물들 군데군데 당구장이 보인다.

호치민 당구장은 테이블 4~6대 규모의 소형 클럽들이 많다. 호치민 3쿠션월드컵 기간인 지난 달 21일, 기자가 방문한 ‘쩐 꾸엣 치엔 당구클럽’(이하 쩐 클럽)은 국제식 대대 6대가 놓였다. 호치민월드컵 우승자인 쩐 꾸엣 찌엔(세계 10위)이 2016년 ‘LGU대회’ 준우승 상금(3,000만원)을 투자해 지인과 공동운영하는 클럽이다.

클럽 입구엔 수십대의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당구장에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연기가 시선을 압도한다. 베트남에는 아직 당구장내 흡연이 허용된다. 선반위에 놓인 재떨이마다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흥미로운 점은 손님들이 3쿠션과 함께 1쿠션, 프리쿠션 등 다양한 캐롬종목을 즐긴다는 것이다. 프리쿠션은 일반 3쿠션과 동일한 방식이나, 수구 선택이 자유로운 캐롬종목을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판, 스코어보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에 수기로 점수를 적었다.

베트남의 유명선수인 마민깜(세계 19위)은 “베트남 선수들 중엔 쩐 꾸엣 찌엔, 응우옌 꾸억 응우옌(세계 14위) 등 일부 선수만이 개인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건물 임대료 등이 비싸 웬만한 선수들은 개인 당구장 개업을 꿈도못꾼다”면서 “(베트남 당구선수)대부분이 정부의 지원금이나 클럽 직원으로 일하며 돈을 받아 생활한다”고 설명했다.

쩐 선수는 “저는 좋은 기회를 통해 큰 돈(LGU대회 상금)을 얻어 이 클럽에 투자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베트남에서도 당구가 인기 스포츠다. 특히 베트남에서 물가가 비싼 호치민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장시간 즐길만한 스포츠로 당구만한 것이 없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호치민 소재 당구장 이용료는 1시간 기준 6~8만동(한화 약 2800원~3700원) 수준. 쌀국수 한그릇 가격(4만동‧약 2000원)의 1.4배, 대형영화관 주말 영화표(13만동‧약 6,100원)의 절반 수준이다. 시간당 1만2,000원(평균)인 한국 당구시장에 비해서는 23~30%수준이다.

베트남 당구장에도 ‘대형화‧고급화’ 바람

지난 5월, ‘호치민3쿠션월드컵’ 현장에서 만난 응우옌 비엣 화 VBSF 국가대표팀 단장은 최근 베트남 당구인기가 상승중이며, 동시에 당구장 수도 증가추세에 있다고 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선 고급화 및 대형화를 표방한 클럽들도 속속 등장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1월), 호치민시 10군(Quận 10)에 오픈한 ‘카우 락 보 빌리아드 336’(클럽 당구 336). 테이블 총 22대(캐롬 테이블 12대, 포켓테이블 10대)가 설치된 클럽이다.

기자가 클럽에 방문한 이날(5월 21일), 한산한 포켓볼 테이블과 달리 캐롬 테이블은 쉴 새 없이 손님들을 받았다. 이 클럽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100~150여명. 연령대는 20~60대로 다양한 편이지만, 30~40대 남성들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또한 클럽 이용객들의 90% 이상이 남성이다.

섭씨 36~38도를 오가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손님들은 게임 중 수시로 수분을 섭취했다. 베트남 당구장에선 물과 음료수가 ‘공짜’가 아니다. 보통 음료수(330㎖)는 1만5,000동(약 700원), 생수(500㎖)는 1만동(약 470원)에 판매된다.

클럽 대표인 권 반 히유(30‧이하 권 대표)씨는 “음료 판매금이 클럽 매상에 꽤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 당구장의 ‘짜장면 문화’를 설명했다. 그러자 권 대표는 배달음식을 먹고 있는 한 손님을 가리키며 “퍼(phở‧쌀국수)!”라고 답했다. 손님이 원하면 도시락 등을 배달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권씨는 ‘내기당구’에 대해선 “우리 가게에선 일체 금한다. 대신 진 사람이 게임비를 낸다”고 말했다. ‘패자는 카운터로’ 라는 암묵적인 룰이 베트남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다.

이어 그는 “베트남 당구 동호인들은 다른 지역에 훌륭한 시설을 갖춘 당구장이 있더라도 굳이 그곳을 가지않고 동네 클럽을 주로 이용한다”면서 “때문에 클럽이 몰려있는 지역에선 고객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호치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빈탄군 ‘바찌에우’(Ba Chieu) 시장.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소문난 ‘관광명소’다. 이 시장을 중심으로 3km 반경에 4개의 당구클럽이 영업 중이다. 이들 클럽들 중 ‘C&B 비다 바찌에우’(클럽 당구 바찌에우‧이하 바찌에우 클럽)가 고급화‧대형화를 표방해 크게 호황중이다.

1000㎡ 규모의 바찌에우 클럽 내부는 바(Bar)를 연상시킨다. 푸른색 조명이 내부를 비추고 있고, 바닥을 제외한 클럽 벽면들은 목재로 덥혀있다.

테이블 22대(중대 17대, 대대 5대)가 들어찬 클럽 중앙엔 미니 바(Bar)가 자리했다. 손님들에게 맥주와 칵테일 등을 제공한다. 전체적인 조명은 어둡지만, 공을 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천장에 설치한 커다란 조명들이 각 테이블들을 밝게 비추고 있다.

바찌에우 클럽의 손님들 중엔 직장인이 많은 편이다. 부동산중개업자인 호왕(33)씨는 “클럽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등이 소문이 나면서 빈탄군은 물론 호치민에서 가장 번화한 1군에서도 이 클럽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클럽 대표인 응우옌 탄 호왕(52)씨는 “시장 근방 4개 클럽이 가격, 서비스 등을 경쟁중인데, 이에 차별화를 두고자 5년 전 클럽을 오픈하면서 지금과 같은 인테리어로, 가격도 다른 구장보다 30% 저렴한 6만동(1시간 기준‧약 2800원)으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출처: MK빌리어드뉴스 (201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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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통계 (2018)

2018년 집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를 살펴보면 국내 당구장 수는 총 2만5159개로 집계됐다.

커피하면 떠오르는 별다방 스타벅스의 전 세계 매장은 당시 2만3571개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당구장을 이용한 하루 인구는 276만 명이었다. 당구동호인수 150만명.

당시 골프장 하루 이용 인구가 8만 명이었으니 비교하면 무려 35배나 높은 수치다.

현재 세계 랭킹 50위권에 이름을 올린 한국 선수는 10여 명. 게다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당구 전문 TV 채널(빌리어즈TV)도 보유하고 있다.

출처: 매경(2020.1)

쿠드롱 선수의 당구관(觀)

쿠드롱은 1년에 공식 경기만 최소 200경기를 소화한다. 이번 만남도 7월 뉴욕과 LA에서 대회를 마치고 고국인 벨기에에 잠시 들렀다 온 것이다. 말그대로 초인적인 일정을 십 수년째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정을 계속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싱겁게도 “당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정말로 당구를 사랑한다. 자기 삶의 모든 중심은 당구에 맞춰져 있으며 그가 유일하게 하는 취미인 탁구도 당구 체력을 키우기 위한 일환이다. 마지막 탁구 게임도 당구로 너무 바빠 2년 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또 그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술은 뇌세포를 퇴화시키는 것이고 담배는 테이블 위에 엎드렸을 때 호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구는 머리와 호흡, 팔이 삼위일체가 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선 원고에서 쿠드롱은 시스템이 아닌 철저히 ‘感’에 의한 당구를 구사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그 ‘感’을 유지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쿠드롱이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을 위해 당구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 내지는 조언을 요청했다. 내심 뒤돌려치기에서 키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던지 멀리 있는 공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쿠드롱만의 비법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쿠드롱의 답은 간단했다

‘훈련’, ‘집중’, ‘절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쿠드롱의 1년 공식경기는 200경기가 넘는다. 그야말로 공식경기가 곧 연습일 정도로 연습 시간을 따로 책정하기 힘든 일정이다. 하지만 30분정도 매일 공을 다루기는 한다. 쿠드롱은 절대 장시간 연습하지는 않는다. 긴 연습시간이 실력향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게 쿠드롱의 지론이다. 대신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해 연습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집중’은 훈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시합에서도 ‘집중’을 주문한다. 이는 당구를 업으로 하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동호인도 마찬가지다. 집중하지 않는 당구는 즐길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순 팔 운동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당구는 머리와 심장, 팔과 정신이 어울러진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이 요하는 운동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동호인들에게도 ‘절제’를 요구했다. 본인처럼 금연, 금주를 요구한 것이다. 얼핏 들으면 전문 선수가 아닌 동호인들에게까지 금욕을 강조하는건 무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뒤이은 설명이 필자의 머리를 때렸다. 그는 당구를 즐기는 것에 선수와 동호인의 선을 긋지 않는다. 오직 ‘당구’를 즐기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다음 질문의 답과도 연관이 있다. 또 하나… 배우자인 제시카가 귀띔을 해준 쿠드롱의 장점은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비상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데 이를 당구에 이용한다는게 곁에서 항상 지켜보는 이의 첨언이다. 30분 내외의 짧은 연습시간이 ‘복기’로 활용하고 있음을 추즉할 수 있다.

[쿠드롱이 꼽은 최고의 선수 무랏 나시 초크루, 터키]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쿠드롱에게 현재 같이 활동을 하는 선수들 중 좋아하는 선수와 싫어하는 선수을 물어봤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터키의 무랏 나시 초크루(Murat Naci COKLU, 터키)와 에디 먹스(Eddy Merckx, 벨기에)를 꼽았다. 초크루 선수는 국내 팬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유럽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플레이어이다. 먹스는 세계 최정상권의 선수로 이미 친숙한 이름이다.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쿠드롱답게 명쾌했다. 게임 스타일이 ‘공정’하기 때문이다. 이 선수들은 게임에 임할 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당구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를 쿠드롱은 성적과 상관없이 최고의 선수로 뽑았다.

반대로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당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성적만을 위해 ‘부정행위(cheating)’를 일삼는 선수들을 싫어한다고 굳은 얼굴로 답했다. 게임 중에 상대에게 신경을 거슬리는 행동을 계속하면서 게임에 지면 기분 나쁨이 확연히 드러내는 선수들은 너무나 거북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는 쿠드롱의 당구 철학과도 연관이 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느낀 점은 그가 보여주는 성적 이상으로 당구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구의 매력으로 ‘변화무쌍‘, ’예측불허‘를 꼽으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훈련하고 정진해나간다는 말을 할 때 쿠드롱의 모습은 경지에 오른 ’도인‘과 다르지 않았다. “좋은 패자가 좋은 승자일 수 있다.”란 함축적인 말이 지금의 쿠드롱을 만든 가장 밑바닥의 저력이 아닐까. 앞으로 당구 인생의 목적은 ‘모든 경기의 승리’라고 말하는 쿠드롱에게 오만함이나 과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이유도 그가 당구를 대하는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팬들에 대해 웃는 얼굴로 “나에게 너무나 예의바르고 친절하다”란 한마디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출처: 매일경제칼럼 (2014년 8월)

AR당구시스템 폐업 후유증

출처: MBN뉴스 2020년 2월 13일

㈜스크린야구왕의 인공지능 당구 시스템인 ‘빌리내비’를 임대해 사용했던 한 소상공인이 자신을 “리스 사기의 피해자”라고 소개,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A씨는 ‘스크린야구왕’ 소속 영업이사의 추천으로 자신의 당구장에 ‘빌리내비’ 설치를 했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스크린야구왕 소속 직원은 “두 달간 무료사용을 할 수 있으며 이후 사용의사가 없을 시 일체의 반환비용, 철거비용이 들지 않고 철거가 가능하다”며 설치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당시 스크린야구왕의 직원은 A씨에게 CNH캐피탈 48개월 리스 계약서에 사인을 하도록 했고 A씨는 두 달 무료사용에 철거비도 들지 않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해 계약확인서, 리스 계약서 등에 사인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데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로부터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스크린야구왕의 빌리내비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해 정상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되지 않았고 이에 A씨는 스크린야구왕에 철거를 위해 연락을 했으나 “회사의 재정이 좋지 않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만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A씨는 리스 계약을 했던 CNH캐피탈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CNH캐피탈은 물건에 관한 책임은 스크린야구왕에 있고, 무상철거 및 무료사용 기간도 모른다며 매달 수십만 원에 달하는 리스료를 그대로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A씨는 “장비가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리스료는 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며 “CNH캐피탈은 리스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하락시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내용증명을 보내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리스 계약을 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장비를 쓰지 못하게 됐는데 CNH캐피탈은 어떻게 스크린야구왕과 납품계약서를 맺고 리스계약을 했는지 의문이다”며 “이에 따라 본인은 소상공인 대출까지 막히는 상황이 됐다, 천만 원이 넘는 기계가 작동도 하지 않는데 돈을 내라는 것은 어느 나라 법인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A씨는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억울함을 표하고 있다.

실제 A씨는 청원글을 통해 “CNH캐피탈이 스크린야구왕과 상품성이 없는 제품에 대해 어떻게 납품계약을 하고 2개월의 짧은 시간에 시장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면서 저지른 불법 행위를 조사해 달라”며 “상품가치도 없는 제품으로 리스상품을 만들어 소상공인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CNH캐피탈의 스크린야구왕과의 계약을 조사해 달라”고 덧붙였다.

해당 청원글은 21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627명의 동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스크린야구왕 공식 홈페이지에 명시된 번호로 연락을 취했으나 결국 닿지 않았으며 CNH캐피탈 측 관계자는 “일례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 뒤 물건이 고장 나면 제조사에 하자 보수를 요청해야 하지 카드사에 요청하지는 않지 않느냐”며 “당구장 사장님들의 입장은 십분 이해하지만 당사는 금융회사기 때문에 책임은 제조사에 있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이어 “스크린야구왕의 폐점으로 당사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당사도 굉장히 답답한 입장이다”고 덧붙였다.

출처 : 뉴스워커(http://www.newsworker.co.kr)

브롬달의 당구 세계 (2016년 5월)

Torbjörn Blomdahl (1962년 10월 26일 스웨덴 출신)

한 스포츠 종목에서 43년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데다 현재(2016년 5월) 세계랭킹 1위라면 그 사람은 당구의 토브욘 블롬달(54)뿐일 것이다. 11살이던 1973년 당구를 치기 시작해 23세에 유럽 챔피언에 오른 뒤 블롬달은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과 유럽선수권대회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각각 9회 우승했다. 매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3쿠션 월드컵에서는 무려 43회나 우승했다.

블롬달은 서울대 출신 당구 천재 고(故) 이상천(1954~2004)과도 각별한 친분을 쌓았고 각종 선수권대회에서 선전하고 있는 현역 한국 선수들과도 ‘형님, 동생’ 할 만큼 가까운 사이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프레드릭 쿠드롱(48·벨기에), 딕 야스퍼스(51·네덜란드), 다니엘 산체스(42·스페인)와 함께 ‘세계 당구 4대 천왕’으로 불리며 각종 선수권대회 성적을 합산해 매기는 세계랭킹에서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토브욘 브롬달 선수

1990년대부터 한국을 찾기 시작해 한국 선수들과 교류해온 그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서울과 부산, 충북과 충남의 당구클럽들을 방문해 동호인들과 즉석 경기를 벌이기도 하고 제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한국 내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회사 ‘코줌코리아’의 충북 청주 사무실에서 블롬달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 내 기반을 좀 더 마련하고 좋은 후원회사도 발굴하고 싶다”며 “아들들(20세·14세)이 더 크면 현재 살고 있는 독일을 떠나 한국에 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년 내내 세계 각국에서 경기를 하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겠군요.

“보통 연 120~190일가량을 외국에서 보냅니다. 지난 1, 2년간은 매년 200일 훨씬 넘게 외국에서 지낸 것 같아요. 그만큼 대회가 많아서 집에 있을 시간이 없네요.”

11살 때 처음 당구를 쳤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레너트 블롬달)가 당구선수였습니다. 3쿠션이 아닌 다른 종목이었죠. 나는 11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3쿠션을 배웠습니다. 그때쯤 아버지가 당구클럽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죠. 결국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1985년)했고 아버지는 1989년에 우승하셨지요. 아버지와 제가 함께 스웨덴 국가대표로 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두 번 우승하기도 했고 아버지와 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적도 있습니다.”

3쿠션의 어떤 점이 매력인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사람들은 공을 갖고 하는 모든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나는 탁구와 축구를 좋아하고 스케이트만 잘 탔다면 아이스하키도 했을 거예요. 3쿠션의 매력은 매우 어려운 경기라는 것입니다. 나는 어려운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해요. 처음에는 어떻게 쳐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생각해야 한 큐를 칠 수 있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 당구를 공부해야 했습니다. 18살 때쯤이 돼서야 비로소 이 스포츠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는 20세 때 프로에 데뷔해 숱한 대회를 제패해 왔다. 당구 애호가들은 그의 플레이를 “화려하지 않지만 정교하고 세밀하며 무엇보다 강한 멘털이 돋보인다”고 말한다. 팬들과 만났을 때 일일이 사인해 주고 스스럼없이 게임을 하는 소탈한 모습도 그의 인기 비결이다.

당구를 스포츠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요.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스포츠입니다.”

보통 스포츠라고 하면 육체적 능력과 기술이 필요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내가 생각하는 스포츠란 누군가와 경쟁하는 모든 경기입니다. 물론 스포츠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은 그게 아닐지 모르겠지만요. 나는 당구를 43년간 해왔고 지금 세계랭킹 1위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경기를 해온 결과 세계 1위가 됐고 여전히 배울 것이 있으니까 당구가 가장 어려운 스포츠인 게 맞습니다.”

당구계에서는 당구의 수가 바둑의 수보다도 더 많다고 말한다. 공들이 이전과 똑같이 서는 경우가 없고 큐를 잡는 오른손과 큐를 지지하는 왼손 브릿지의 견고함, 떨리지 않고 정확한 스트로크를 하려면 역도선수 정도의 체력과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고도 한다.

“당구는 가장 어려운 스포츠”

당구를 시작할 즈음의 어린 브롬달

당구를 잘 치려면 눈이 좋아야 하겠지요? 멀리 있는 공을 원하는 두께로 맞히려면요.

“당구는 눈이나 손으로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이것으로 하는 것이지요. 경기 계획을 세우고 좋은 포지션 플레이(공을 치기 좋은 위치에 놓이도록 하는 것)를 해야 합니다. 눈과 손은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을 실행해줄 뿐이지요.”

당구 경기 중에서도 3쿠션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경기이며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쟁쟁한 유럽 선수와 한국 선수들로부터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야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3쿠션은 내 평생의 직업이자 목표입니다. 내가 아는 한, 프로 3쿠션 선수 중에서 은퇴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레이몽 클루망(벨기에 당구선수)을 보세요. 올해 79세인데 여전히 경기에 나옵니다. 나는 지금도 밤새도록 당구 이야기를 해도 전혀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아요.”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당구장에 가서 팬들과 게임을 했군요?

“그럼요. 그들에게 제가 당구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연습도 되니까요.”팬들과 경기하면 실력 차가 너무 커서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반대예요. 왜냐하면 내가 계속 칠 수 있거든요. 나는 의자에 앉아있는 걸 싫어해요. 경기 후 인터뷰할 때도 꼭 서서 하는데, 당구에서 앉아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서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내가 지고 있다는 거죠. 하하하.”

절대로 득점할 수 없는 공을 실전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한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 공이 당구대 코너 끝에 붙어 있고 바로 앞을 두 공이 막아선 경우가 있었죠. 그 경우도 100%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죠. 아마 100번, 1000번 시도하면 득점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당구 4대 천왕’이란 호칭은 어떤가요?

“3명은 빼야 하지 않을까요? 나 혼자 천왕이 되고 싶은데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사실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 에디 먹스(벨기에)도 비슷한 레벨의 선수들입니다. 다만 우리 네 명이 선수권대회 우승을 많이 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거겠죠.”

100% 칠 수 없는 공이란 없다

블롬달의 최다 하이런(연속 득점) 기록은 1990년대 말 네덜란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친 24점이다. 3쿠션을 연속해서 24득점 한다는 것은 축구로 치면 5경기 연속 해트트릭, 야구로 치면 10경기 연속 홈런 정도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기록들을 쌓아 애버리지(이닝당 평균득점) 1.9에 가까운 스코어를 갖고 있다.‘인생 최고의 경기’라고 부를 만한 경기가 있습니까?

“6, 7년 전 에디 먹스와 네덜란드에서 했던 경기가 생각납니다. 50점을 먼저 내는 경기 방식이었는데 내가 47대 15로 끌려가고 있었어요. 그것을 결국 50대50 무승부로 끝냈습니다.”당구는 특히 정신력이 중요한 게임이라고 하는데요.

“나는 실수를 하거나 설령 경기에 진다 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음 샷, 다음 경기를 더욱 정교하게 치고 또 좋은 포지션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다음번엔 좋아질 것이고 정신력도 되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성적도 기록하지 않아요. 내 인생은 오늘과 내일뿐입니다. 어제는 이미 내 인생이 아니에요. 나는 오늘과 내일 더 나아지고 싶습니다.”

3쿠션 초보자에게 일러줄 만한 충고가 있습니까?

“수많은 시간을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3쿠션 선수는 오랜 경험 없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당구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그 경험이 쌓여서 실력으로 발휘되는 것이 3쿠션 경기입니다.”

당구를 40년 넘게 해 오면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쉬지 않고 나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당구도 그렇지만 인생도 정말 그래요.”

출처: 매국언론 조선일보 2016년 5월 21일 기사 중에서

인텐 점수판 출시

인텐은 브랜차이즈 브랜드 런칭과 디지털 당구 스코어보드 큐-비전(Q-VISION)을 자체 개발하여 출시 했다. 큐-비전은 기존의 디지털 스코어보드의 50% 대의 저렴한 비용이며, 중대 / 대대에 모두 설치 할 수 있는 디지털 스코어 보드이다.

특히, 기존 보드들은 3대 전용으로 대대에만 설치가 가능하였으나 큐-비전은 3구 게임 / 4구 게임의 룰을 모두 적용하여 중대 및 대대에도 설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시스템이다.

 인텐은 큐-비전을 통해 고객 유치를 위한 지속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하며, 가맹점의 활성화를 돕고 음식 주문 플랫폼과 미디어 광고를 통해 매장의 부가 수익을 창출해 본사와 매장 모두가 상생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후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자동 점수 스코어보드 큐-비전 AI (Q-VISION AI)를 상용화 할 계획에 있으며, 관련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마친상태이다. 큐-비전 AI는 국내 최초 상용화 단계에 있는 시스템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출처: https://www.gotit.co.kr/archives/37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