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드롱 선수의 당구관(觀)

쿠드롱은 1년에 공식 경기만 최소 200경기를 소화한다. 이번 만남도 7월 뉴욕과 LA에서 대회를 마치고 고국인 벨기에에 잠시 들렀다 온 것이다. 말그대로 초인적인 일정을 십 수년째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정을 계속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싱겁게도 “당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정말로 당구를 사랑한다. 자기 삶의 모든 중심은 당구에 맞춰져 있으며 그가 유일하게 하는 취미인 탁구도 당구 체력을 키우기 위한 일환이다. 마지막 탁구 게임도 당구로 너무 바빠 2년 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또 그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술은 뇌세포를 퇴화시키는 것이고 담배는 테이블 위에 엎드렸을 때 호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구는 머리와 호흡, 팔이 삼위일체가 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선 원고에서 쿠드롱은 시스템이 아닌 철저히 ‘感’에 의한 당구를 구사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그 ‘感’을 유지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쿠드롱이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을 위해 당구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 내지는 조언을 요청했다. 내심 뒤돌려치기에서 키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던지 멀리 있는 공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쿠드롱만의 비법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쿠드롱의 답은 간단했다

‘훈련’, ‘집중’, ‘절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쿠드롱의 1년 공식경기는 200경기가 넘는다. 그야말로 공식경기가 곧 연습일 정도로 연습 시간을 따로 책정하기 힘든 일정이다. 하지만 30분정도 매일 공을 다루기는 한다. 쿠드롱은 절대 장시간 연습하지는 않는다. 긴 연습시간이 실력향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게 쿠드롱의 지론이다. 대신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해 연습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집중’은 훈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시합에서도 ‘집중’을 주문한다. 이는 당구를 업으로 하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동호인도 마찬가지다. 집중하지 않는 당구는 즐길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순 팔 운동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당구는 머리와 심장, 팔과 정신이 어울러진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이 요하는 운동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동호인들에게도 ‘절제’를 요구했다. 본인처럼 금연, 금주를 요구한 것이다. 얼핏 들으면 전문 선수가 아닌 동호인들에게까지 금욕을 강조하는건 무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뒤이은 설명이 필자의 머리를 때렸다. 그는 당구를 즐기는 것에 선수와 동호인의 선을 긋지 않는다. 오직 ‘당구’를 즐기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다음 질문의 답과도 연관이 있다. 또 하나… 배우자인 제시카가 귀띔을 해준 쿠드롱의 장점은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비상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데 이를 당구에 이용한다는게 곁에서 항상 지켜보는 이의 첨언이다. 30분 내외의 짧은 연습시간이 ‘복기’로 활용하고 있음을 추즉할 수 있다.

[쿠드롱이 꼽은 최고의 선수 무랏 나시 초크루, 터키]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쿠드롱에게 현재 같이 활동을 하는 선수들 중 좋아하는 선수와 싫어하는 선수을 물어봤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터키의 무랏 나시 초크루(Murat Naci COKLU, 터키)와 에디 먹스(Eddy Merckx, 벨기에)를 꼽았다. 초크루 선수는 국내 팬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유럽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플레이어이다. 먹스는 세계 최정상권의 선수로 이미 친숙한 이름이다.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쿠드롱답게 명쾌했다. 게임 스타일이 ‘공정’하기 때문이다. 이 선수들은 게임에 임할 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당구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를 쿠드롱은 성적과 상관없이 최고의 선수로 뽑았다.

반대로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당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성적만을 위해 ‘부정행위(cheating)’를 일삼는 선수들을 싫어한다고 굳은 얼굴로 답했다. 게임 중에 상대에게 신경을 거슬리는 행동을 계속하면서 게임에 지면 기분 나쁨이 확연히 드러내는 선수들은 너무나 거북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는 쿠드롱의 당구 철학과도 연관이 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느낀 점은 그가 보여주는 성적 이상으로 당구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구의 매력으로 ‘변화무쌍‘, ’예측불허‘를 꼽으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훈련하고 정진해나간다는 말을 할 때 쿠드롱의 모습은 경지에 오른 ’도인‘과 다르지 않았다. “좋은 패자가 좋은 승자일 수 있다.”란 함축적인 말이 지금의 쿠드롱을 만든 가장 밑바닥의 저력이 아닐까. 앞으로 당구 인생의 목적은 ‘모든 경기의 승리’라고 말하는 쿠드롱에게 오만함이나 과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이유도 그가 당구를 대하는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팬들에 대해 웃는 얼굴로 “나에게 너무나 예의바르고 친절하다”란 한마디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출처: 매일경제칼럼 (2014년 8월)